사는 사람과 머무는 사람,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구 지도
어느 지방 소도시의 오후를 상상해 보자.
오래된 상점이 문을 닫고, 학교에는 빈 교실이 늘어난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는 조금씩 조용해진다.
우리는 이런 풍경을 ‘지방소멸’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정말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지역을 이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걸까?
1. 숫자로 확인되는 위기, 92개 인구감소지역

2026년 10월, 행정안전부는 전국 92개 시·군·구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재지정한다고 발표했다.
2021년 최초 지정 당시 89개 지역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지정된 지역 수가 세 곳 늘어났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이번에는 인구증감과 고령화뿐 아니라 취업자 수, 생활인구 등 지역의 활력을 반영하는 지표도 추가되었다.
따라서 89개에서 92개로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지방소멸 속도가 빨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인구가 얼마나 줄었느냐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 어떤 생활이 가능하냐는 문제다.
2. 사람들은 여전히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2025년 국내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수도권은 약 3만 8천 명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2024년보다 순유입 규모는 약 7천 명 줄었지만, 수도권으로 향하는 순이동 흐름은 이어졌다.
이 숫자는 출생과 사망을 포함한 전체 인구증감이 아니라, 거주지를 옮기는 인구의 이동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익숙한 고향을 떠나는 걸까?
일자리 때문일 수도 있고, 교육이나 의료서비스, 주거와 교통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지방소멸은 단순한 인구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한 지역에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 문제다.
3. 그런데 지방에 ‘사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여기서 또 다른 숫자를 보자.
행정안전부와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1분기 생활인구 통계에 따르면, 2월 당시 89개 인구감소지역의 등록인구는 약 484만 명이었다.
그런데 체류인구는 약 2,098만 명으로, 등록인구의 약 4.3배에 달했다.
등록인구와 체류인구를 합친 생활인구는 약 2,582만 명이었다.
생활인구는 그 지역에 등록해 거주하는 사람뿐 아니라, 월 1회 이상 하루 3시간 이상 머무르는 사람까지 함께 보는 개념이다.
물론 방문객이 많다고 지역경제가 회복된 것은 아니다. 잠시 머무는 사람이 많아도 상점 매출이나 주민의 생활여건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 통계는 당시 지정된 89개 지역을 대상으로 집계했기 때문에, 2026년 10월 재지정된 92개 지역과 조사 범위가 다르다.
그럼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동안 지역에 주소를 둔 사람만으로 지방의 미래를 판단해 온 것은 아닐까?
4. 지방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사람 수만이 아니다
앞으로의 지역정책은 두 가지 질문을 함께 다뤄야 할지 모른다.
누가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누가 이곳을 찾아오고, 머물고, 다시 돌아오는가.
상주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도 관광, 업무, 가족 방문, 문화 활동 등으로 사람이 오갈 수 있다.
그러나 잠깐의 방문을 지속 가능한 지역 활력으로 연결하려면 일자리, 교통, 의료, 교육, 문화와 같은 생활의 기반이 필요하다.
지방소멸을 막는다는 것은 과거와 똑같은 인구 규모를 되찾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 살아갈 이유와, 다시 찾아올 이유를 함께 만드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방의 미래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LEPARCO QUESTION
당신이 어느 지역에 계속 살기로 결정한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일자리, 가족, 교육, 교통, 자연환경.
그리고 당신이 떠난 고향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참고 자료
- 행정안전부(2026.10.07.), 「5년 만의 인구감소지역 재지정, 지역 활력 회복을 위한 지원을 강화한다」
- 국가데이터처(2026.01.29.), 「2025년 국내인구이동통계 결과」
- 행정안전부·국가데이터처(2026.07.30.), 「2026년 1분기 인구감소지역 생활인구 산정 결과」
※ 통계마다 조사대상과 기준시점이 다르므로 수치를 직접 합산하거나 동일 모집단의 변화로 해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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